낭만적(?) 일상/책과 영화

피로사회,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 : 두 책의 연결고리

Soo♥JJeong 2020. 12. 26. 20:00

어느덧 나만의 시선찾기 2020 마지막 모임이 끝났다. 마지막 책은 '피로사회'. 책 표지부터 피곤해보이는 얼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실 오래전에 책을 사두었는데, 얇다고 얕잡아봤나보다. 토론 하루 전에서야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왜이리 눈에 안들어오던지. 다행히 토론을 하면서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니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피터님이 추천해 준 또 하나의 책 -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 이 두 권의 책을 연달아 읽고나니, 두 개의 책을 엮어서 독후감을 쓰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책의 공통점은?

 

두 책의 공통점. ① 보라색  ② 얇지만 내용이 알차다 ③ 바쁘거나 지친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먼저 '피로사회'는 현대사회의 현상을 얘기한다. 그래서 뭐? 라고 한다면, 사실 대안은 없다.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는 피로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루함'이라는 대안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한참전에 읽었던 '디지털미니멀리즘'은 '지루함'에 도달하기 위한 조건(스마트폰, SNS 최소화)을 알려준다. (피터님이 골라준 책은 뭔가 연결고리가 다 있었던 거다. 이걸 알아낸 나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

 

  피로사회 :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피로사회의 지은이는 '한병철'. 분명 한글 이름인데, 옮긴이가 따로 있다. ''피로사회'를 통해 독일에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가장 주목받는 문화비평가로 떠올랐으며'라는 지은이 소개에서 독일어로 출판된 책을 번역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이 이렇게 읽기 어려운 것은 지은이 탓일까 옮긴이 탓일까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

 

'피로사회'의 첫 장, '신경성 폭력'은 스킵하고 넘어가는 것이 정신에 이로울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오늘날 더 이상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면역학적 기술에 힘입어 그 시대를 졸업했다.'라는 말도 안되는 문구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렇게 함부로 단언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

 

'피로사회'의 핵심 문장을 꼽는다면 다음 문장이 아닐까 싶다.


21세기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라고 불린다.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쥐차는 동시에 피착쥐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저자는 사람들이 피로해진 이유로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자기 착취'를 꼽는다. 생각해보면 맞다. 대학원 발표 수업에서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부족했다, 성의가 없었다'고 피드백한다. 그렇게 우리는 어떤 과제가 주어지면 잘 해내야 한다고 학습한다. 회사를 다니며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도 어쩌면 스스로를 착취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날의 사회는 날이 갈수록 금지와 명령의 부정성을 철폐해가며 자유로운 사회를 자처하는 성과사회다. 성과사회를 규정하는 조동사는 프로이트의 '해야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이다.

이 문구를 읽으면서 언젠가 친한 직원들끼리 팀장님들 얘기를 했던 대화가 기억났다.

"우리 팀장은 너무 예스맨이야. 위에서 시키면 다 받아와."

"야, 시키는거만 하면 다행이지. 우리 팀장은 '이것도 할수 있습니다!'하면서 시킨거 외에 다른것도 한다고 해. 내가 미쳐버리겠어."

피로사회를 쓴 저자도 회사생활을 해봤나보다. 피로사회의 예시는 회사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공감할 내용들이다.


힘에는 두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긍정적 힘으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 힘으로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니체의 말을 빌린다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다. 이러한 부정적 힘은 단순한 무력함, 무언가를 할 능력의 부재와는 다른 것이다. ... 부정적 힘은 무언가에 종속되어 있는 긍정성을 넘어선다. 그것은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다.

최근들어 나를 지키는 방법으로 '에너지 관리'를 실천하고 있다. 에너지 관리도 피터님이 알려준 것인데, 나의 에너지를 모든 일에 소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일에 배분하는 것이다. 회사 업무, 학교 과제, 이사 등 여러 일을 해야할 때 시간관리도 해야하지만 에너지 관리를 하면서 집중해야할 때와 덜 집중해야할 때를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 일에 에너지를 100% 쏟지 않고 일부를 남겨놓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야 타인의 지적에 조금 더 관대할 수 있고, 그들의 할 일도 남겨줄 수 있으니. 회사 생활 13년만에 알게 된 에너지 관리. 이것은 '피로사회'에서 말하는 부정적 힘으로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다.

 

자. 이렇게 피로한 사회에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는 책이 답을 알려준다.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 : 마크A. 호킨스 지음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하다가 4가지 정도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책 내용은 #1 하단에 있다.

 

#1. 지루함을 소개하는데 지루하지 않다.
'지루함'이라는 소재로 한권의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지루함'을 얘기하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앞서 읽은 '피로사회'의 현학적인 표현과 대비되서일까, 아니면 번역이 잘 되서일까. 우리말이 아닌 언어임에도 너무나도 매끄럽게 번역되어 있다. 무엇보다 목차를 잘 잡았고, 내용이 목차에 충실하다. 

 

그 중에서도 1,2,4,5,6장의 내용에 밑줄을 많이 그었다. 쉽게 쓰여있으니, 쓱 읽어보면 '지루함'이 어떤 것이고 지루함이 갖고 있는 힘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2장. 우리는 왜 지루함을 회피하는가?
우리가 지루함을 진저리치도록 싫어하는 또 하나의 큰 이유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사투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있기 대문이다. 싸워서 얻어낸 삶이어야만 전적으로 몰입할 수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신이 세운 계획의 일부일수도 아니면 다른 우주적 작용의 일부일 수도 있지만, 명확한 사실은 그 계획이 무엇인지,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낼 길이 없다는 것이다. ...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는 진리 때문에 나만의 의미를 찾는 과정은 더 급박하고 초조하다.


4장. 지루함은 명상, 그 이상이다.
마음챙김은 우리마음의 대상 또는 행위에 대한 약한 관련성을 지루함의 공간으로 다시 끌어오기 때문에 지루함을 치료하는 약이다. 결국 마음챙김은 지루함에서 주의를 환기하는 또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이에 반해 지루함은 주위 대상 또는 행위와의 관련성이 완벽히 제거된 상태다. 의미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마음챙김이 우리를 무의 근처까지 인도한다면, 지루함은 그보다 더 가까이 데려다준다.

지루함은 의도가 배제된다. 지루함의 한계를 우리가 정의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지루함을 향해 말을 걸 수도 없다. 지루함은 그저 밀려오는 것이다. 존재의 헐벗음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불쑥 들어온다. 그러기에 우리는 불편해진다. ... 지루한 순간을 허락하는 것은 무를 경험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5장. 지루함으로 향하다.

어떤 일이 됐건 '미리 앞당겨 하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는게 중요하다. 우습게도 우리는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사람이어서 시간을 절약했다고 생각하지만, 또 여유 시간이 생기자마자 다른 일을 해서 그 틈을 채운다. 여유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

지루함이 찾아올 때 잘 붙잡는 것도 중요하다. 시간을 비워놓고 기다려도 지루함이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 지루함도 결국 감정이기 때문이다....지루함은 자신을 포함하여 삶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유를 깨닫는데 도움을 준다. 우리가 자고 나란 의미 체계의 쇠사슬을 끊어주는 것이 바로 지루함이다.

6장. 지루함의 중요성
지루함은 우리에게 잠시 쉬고, 돌아보고, 인생의 큰 그림을 다시 바라볼 시간과 공간을 안겨준다. 창조건 소비건, 잠시 끊고 쉬어야 다시 시작했을 때 즐겁다.

우리가 지루할 틈을 가질 때마다 인생과 세상, 존재를 통찰할 기회를 얻는다. 인생에 지루함을 더 많이 허락하면, 이러한 통찰들은 상호작용과 혼합을 반복해 더욱 새롭고 심오한 통찰을 내놓는다. 지루함은 위대한 인생을 창조하는데 밑거름이 될 개인적이고 철학적인 발견이 끝없이 소용돌이 치는 곳이다.


#2. '지루함'보다는 '심심함'이 어울린다. 
문득 '지루함'이라는 단어보다 '심심함'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함을 찾으면 심심함이 옆에 나오기는 하지만, 두 개의 감정은 다른 것이 아닐까? (책에서는 텅빈 지루함과 실존적 지루함을 나누고 있으나, 둘의 차이를 정확히 모르겠다. '심심함'이 직관적인것 같다.)


지루함 :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관심을 잃고 질려있는 것.
심심함 :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 느끼는 감정.

만약 저렇게 구분이 된다면, 제목을 '당신은 심심함이 필요하다'로 바꿔야 할것이다.

 

#3. 나는 심심함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심심함을 실천할 수 있을까? 틈이 나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포스팅을 한다. 사놓고 읽지 못한 책도 많다. 내년으로 미뤄진 자격증 준비도 해야하고, 파이썬도 공부해야한다. 살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작년까지는 여기에 여행계획도 장시간 세웠으며(여행간 시간보다 계획에 엄청 많은 시간을 쏟음),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살았었다. 이런 나에게 '지루함(심심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다니. 의도적으로라도 심심함을 실천해봐야겠다.

 

#4. 피로사회- 디지털미니멀리즘-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 책들의 연결고리.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 피로사회
"인간의 모든 문제는 홀로 방안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 - 디지털미니멀리즘
"지루함은 우리에게 잠시 쉬고, 돌아보고, 인생의 큰 그림을 다시 바라볼 시간과 공간을 안겨준다.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

세 권의 책은 분명 연결고리가 있다. '피로사회'에서는 현상을 설명하고, '디지털미니멀리즘'은 방법을,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에서는 목표 상황을 알려준다. 성과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자기를 착취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방에 홀로 조용히 앉아있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스마트폰을 뒤척이며 의미없는 정보와 마주한다. 심심함을 느낄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2020년은 사라진 시간이라고들 말한다. '피로사회'에 살아가는 우리가,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지루함(심심함)'의 시간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