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일상/책과 영화

배움에 관하여 :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 강남순 저

Soo♥JJeong 2020. 11. 29. 20:23

독서모임 11월의 책은 '배움에 관하여' 였다. 제목에 있는 '배움'이라는 것을 지식의 습득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책 내용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배움'이라는 것을 너무 좁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도 작가가 쓴 문체, 선택한 단어들이 맘에 들었고, 어딘가 모르게 따뜻했다.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논리적이면서도 표현이 깔끔했다. 정말 많은 밑줄들이 있었지만, 나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던 3문장 정도만 뽑아보고자 한다.

 


자기 사랑'이라는 이름의 과제
- 친구의 자살에 충격 받고 정상생활을 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해준 말

친구 관계를 포함해서 모든 여타의 관계에 자신을 헌신한다는 것은, 둘 중 한 사람은 언제나 다른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그 누구도 동시에 죽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인간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전보다 더욱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기를 바란다. '자기 사랑'을 배우고 연습하지 않으면, '타자 사랑'을 하는 법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자기 사랑'이란 자동으로 알게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워야하고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의 정원
- 박사과정을 앞두고 결혼 예정인 학생에게 해준 조언

 

무수한 관계망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이러한 무수한 관계망들은 '나'의 특정한 역할들을 규정하고 나에게 기대하면서 그 '역할의 상자' 속에 '나'를 넣어버린다. 사적인 친밀성의 영역에서든 공적 영역에서든 우리는 무수한 역할 속에서 규정되고 관계맺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망들이 복잡해질수록 가장 중요한, 모든 관계의 가장 근원이 되는 관계가 무엇인지는 종종 망각한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는 '나'와 '또 다른 나'가 끊임없이 대화해야 성립한다. 그 대화를 통해서만 '나'가 가졌던, 깊숙이 가지고 있는, 앞으로도 지키고 싶은 이 삶에의 열정과 애정을 확인하고 긍정하고 격려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나'는 이미 만들어진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하는 '형성 중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계속 배우라, 책 속에 길이 있다
- '그만 배우라, 책속에 길이 있다는 건 거짓'이라는 인터뷰 기사 제목에 대한 의견


배움이랑 정보의 축적이 아니다. 이 '세계 내 존재로서의 나'에 대한 성찰과 인식을 통하여, 그 '나'를 '타자'와 '세계'로 확장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배움이 이루어지는 통로는 매번 참으로 다양하며, 대체 불가능한 하나의 '사건'으로 결험될 뿐이다.

저자는 한 권의 책이 담고있는 의미들을 독점하며, 독자는 수동적인 수혜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저자 기능'에 대한 근대적 오류의 하나이다. 책이 출판되자마자 저자는 사라진다. 소위 저자의 본래적 의도와 상관없이 독자는 제2, 제3의 저자로 기능하면서 '자기만큼' 책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만들어간다.

저자가 한 권의 책에서 제시하는 그 '세계'는 그 저자만의 세계가 아니라 '나'와도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 다양한 '세계들'인 것이다. 한 권의 책이 심오한 세계들로의 초청장이 되는 이유이다.

 

이 3개의 문장들은 결국 '나'와 연관되어 있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고 자기 사랑을 끊임없이 실천해야 하고, 그 실천 방법으로서 나 자신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나와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한다. 그리고, 책이라는 초청장을 통해 나와 연관된 작가의 세계를 탐험하고 의미를 찾아 나의 세계를 넓힐 필요가 있다.

 

어쩌면 '배움'이란,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똑같은 수업, 강연을 듣거나 책을 읽어도 개개인의 처한 상황, 배경지식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배움을 '나를 타자와 세계로 확장하는 과정'이라는 표현이 너무도 와닿았다. (흑. 이런 표현력은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결국 '배움의 관하여'는 작가의 삶에 묻어난 '배움'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시작하며'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이 문구가 마음에 드는 사람은 꼭 읽어보기를.  

 

 

이 자서전적 배움에는 차별을 넘어서는 평등과 연대, 배제와 증오를 넘어서는 따스한 환대, 그리고 무엇보다 절망을 넘어서는 희망의 세계를 향한 나의 절절한 갈망이 담겨있다. 나의 이 작은 배움의 정원으로 독자여러분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