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2월의 책은 '다가오는 말들'. 리디셀렉트에 없어서 오랜만에 종이책으로 읽었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쳐가면서. (TMI. 종이책은 밑줄친 것들을 찾으려면 책을 다시 봐야하는데, ebook이 밑줄친 내용을 한번에 볼 수 있어서 ebook이 더 편한것 같다.)
독서모임 운영자의 또다른 모임 '하루 15분 필사모임'에서 필사했던, '서평을 쓸 때 책의 내용이 아니라 나의 변화에 대해 쓴다.'는 문구가 너무 좋아서, 앞으로 독후감에 나의 변화를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밑줄그은 문장도 함께 기록해 놓아야지.
나의 변화
책을 잠시 덮고 나에게 물어본다. 이 책을 읽고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책으로 인해 변화된 나의 행동은 무엇일까? 생각나는 몇 가지를 적어 보려한다.
#1. 여자에게는 '남자친구', 남자에게는 '여자친구'가 있거나 있었거나 있을 예정이라고 단정짓지 않고, '만나는 사람'으로 바꿔서 생각하고 언급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크게 깨달은 부분이다. 왜 지금까지 여자는 남자친구가, 남자는 여자친구가 있거나 있었거나 있을거라 생각했을까. 분명 성 소수자도 있을 수 있는데 나는 남녀 커플만을 생각했던것 같다.
#2. 눈이 예쁘게 오거나 날이 좋은 날엔 출근길이라도 카페에 들어가 창밖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러면 나도 퇴사할 수 있을까.)
작가는 눈이 너무 예쁘게 오는 날에 회사에는 일이 생겼다고 하고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그 회사를 곧 그만두게 되었다고.) 돌이켜보니, 난 그래봤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매일 쳇바퀴 돌듯, 회사로 출근하는게 당연했고 출근길에 저런 땡땡이를 계획해보지 못했다. (물론 회사에 가서 몰래 땡땡이를 치거나 갑자기 오후에 일이 있다고 하고 나와서 남편과 놀러간 적은 있다.)
여기서 주목할 포인트는 '출근길'이라는 건데, 난 아침형인간이 아니라 아침부터 땡땡이를 치고 놀기엔 덜깬 상태이기 때문에 시도를 못해본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언젠가 꼭 해보리라고 다짐한다.
#3.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글을 이렇게나 잘 쓸 수 있고, 심지어 글쓰기 모임의 이끌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유'작가의 글은 흡인력이 대단하다. 한번에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들다니. 예쁜 표현이라고 느껴진 부분도 많았고,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 분은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다니! '스펙보다 스토리'라는 말이 와닿는 작가였다.
쓰는것을 좋아하면, 이렇게나 잘 쓸수 있구나. 나도 언젠가는 은유 작가처럼 멋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글쓰는 모임의 이끌이에 도전해보고 싶다.
내가 밑줄그은 문장들
내가 밑줄 그은 문장들은 공통점이 있다. 한번쯤 생각해봤음직한 것들을 글로 너무나도 잘 표현했다는 것. 그 소재는 스쳐지나가는 만남, 사랑, 일의 의미, 가족, 여성 등이다.
1부. 나를 천천히 들여다보면
하찮은 만남들에 대한 예의 나이 들면서 체지방이 늘 듯 안쓰는 핸드폰번호가 쌓인다. 번호는 정리해도 인연은 삭제되지 않고 내가 피해도 삶이 만나게 한다. 사는 동안 운명을 뒤바꿔놓을 결정적인 만남은 거의 일어나지 않겠지만 신상정보 업데이트가 안 된 지인들과의 애매한 만남, 아니 마주침은 종종 일어날 것 같다. ... 이 단편적 만남, 하찮은 우연에 잘 임하고 싶다. 안색을 살피고 고요를 챙길것. 앞으로 수차례의 결혼식과 장례식 그리고 대중교통 탑승기회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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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기억력을 좀더 보태고 싶다. 요즘 가끔.. 아는 사람인것 같은데, 어디서 본 사람인지, 이름은 무엇인지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마주침에서 가장 애매한 순간은 한쪽만 기억하는 것이다. (차라리 양쪽 다 기억을 못해서 그냥 지나가는게 더 낫다.)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기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은 침묵하는 법을 익히고 남성은 감정을 도려내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가부장제는 인간 본성을 왜곡시키고 그 하자와 결함을 체화한 젠더 역할 수행을 윤활유삼아 굴러간다. 말하기를 익히지 못한 여성이 공감을 배우지 못한 남성과 동료시민으로 살아가자니 여기저기서 삐걱거리고, 맞추어 살자니 공부가 끝이 없다. ... 난 강연 중 눈물바람이 벌써 세 번째다. ... 내 나약함을 혐오하지 않기 위해 목표를 바꾼다. 울지않고 말하는게 아니라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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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많은 내가 꼭 갖춰야할 기능이다. 난 너무 잘 울어서 가끔은 나조차도 스스로를 신기해한다. 별일도 아닌데 눈물이 그렁그렁. 그래, 울더라도 내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하자.
2부. 당신의 삶에 밑줄을 긋다가
사랑에 빠지지 않는 한 사랑은 없다 사랑은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치 않다는 점에서 쉽고, 자기를 내려놓아야한다는 점에서 어렵다. 그러니 사랑을 얼마나 해보았느냐는 질문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 당신은 다른 존재가 되어보았느냐. 왜 사랑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비활성화된 자아의 활성화가 암울한 현실에 숨구멍을 열어주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존재의 등이 켜지는 순간 사랑은 속삭인다. "삶을 붙들고 최선을 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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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몇 번 이 삶이 이대로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던 건 그 때마다 내 옆에 존재의 등이 켜졌기 때문..
아름다운 낭비에 헌신할 때 우리는 일이란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해요. 이 세상에는 모든 이들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만큼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란 건 있을 수 없어요. 일이 의미있기를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몰염치라고 했다는 조지 산타야나의 말까지 덧붙이면서, 삶의 유일한 의미는 배움에 있다고 그(에릭 호퍼)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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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 나의 뒤통수를 확! 때리다니. 이 글을 본 다음부터 의미 찾기를 그만두었더니 스트레스가 줄었다.
어른들의 말하기 공부 한발 뒤로 물러서니 침묵의 다른 기능이 보였다. 침묵은 정지의 시간이 아니라 생성의 시간이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지만 아무말이나 하지 않으려 언어를 고르는 시간, 글을 쓴 이의 삶으로 걸어들어가 문장들을 경험하고 행간을 서성이고 감정을 길어내는 활발한 사고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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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어떻게 이렇게 표현하지? 이 작가분의 표현력에 가장 많이 감탄한 문장이다.
3부. 우리라는 느낌이 그리울 무렵
불쌍한 가족 만드는 이상한 어른들 가족 내부의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삭막하다. 각각 밥하고 돈벌고 공부하는 도구적 존재로서 서로를 구실삼아 정상 가족의 그럴싸한 외양을 유지한다. "자녀를 소유물처럼 대하고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녀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려드는 부모라는 권력"은 체벌이나 학대같은 친밀한 폭력을 은밀히 혹은 대놓고 행사한다. ... 한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든 신체적 온전함과 존엄성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부모님 뭐하시느냐' 다짜고짜 묻지 않는 어른이 많아져야 하고 이력서에 가족관계를 쓰지 않도록 하는 제도가 생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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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 중 하나. 나 역시 자녀를 소유물처럼 대하는 사람이 될까봐. 안그러면 되지않겠냐고? 30년간 그렇게 자란 사람이 다르게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할것 같은데 나는 그럴만한 여유도 체력도 없다.
4부. 낯선 세계와 마주했을 때
여자는 왜 늘 반성할까 여성의 신체는 거의 자동 반성 모드다. 왜들 그럴까. 남성 지배적 문화에서 여성은 불합리한 상황에 자주 노출된다. 그때마다 시비를 가리고 싸우고 상황을 바꿔내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남자는 원래 그런 종족이고 여자는 원래 그렇게 사는 거라고 배웠다. 원래 그런 것을 두고 왜 그런지 뿌리부터 따지자니 어렵고 복잡한데,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건 쉽고 간단하다. 자기 반성으로 상황을 무마하고 또 일상을 살아가고 그랬던게 아닐까 싶다.
글쓰기 강좌에 여성이 몰리는 이유 남자 아이들은 가정의 부양자로 길러질 뿐아니라, 의사소통에도 서툴고 자신의 감정에 무관심하도록 조건화되기 때문에 예술은 자신들에게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에 무관심하도록 조건화됐다는 말을 내식 대로 풀어본다. 적극 소통이나 자기의심을 하지 않아도 이 세상을 사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는 뜻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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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성에 대한 언급이 참 많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전까지 이상하게 느껴본적 없던 것들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왜이렇게 공감이 되는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잘 포착해서 글로 담아내고 전달하는 작가의 필력이 너무나도 부럽다.
차분히 불행에 몰두하세요 글쓰기에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마무리다. 이메일 말미에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고 쓰거나, 일기장 마지막 문장으로 '오늘도 참 보람찬 하루였다'라고 하는 것처럼 글쓰기에서도 교훈적인 맺음에 집착한다. 즉, 불행한채로 끝내는 걸 두려워한다. ...이젠 제람의 사례를 들어 말해도 될까. '오늘도 행복하세요' 말고, '차분히 불행해 몰두하세요'라고. 내용없는 희망은 불행을 대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주 그 불행의 씨앗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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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충분히 느껴라라는 표현을 책에서 볼 줄이야. 이게 맞는 것 같다. 불행에 몰두하다보면 그 불행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도 생기고, 헤쳐나갈 방법도 찾게된다. 멀쩡한척 살다 언젠가 훅. 후폭풍이 올 수 도 있으니.
밑줄 그은 문장들을 기록하면서, 나에게 이런 말들이 다가왔었구나를 새삼 느낀다. 그래서 책 이름이 '다가오는 말들' 인걸까? 책 뒷날개에 나온 문장들은 내가 밑줄 친 것과 하나도 겹치는게 없다. '2020 나만의 시선찾기' 모임 분들에게 다가온 말들은 무엇이었을까? 이번 달 그룹콜도 기대가 된다.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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